복음이 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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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161938–1945

무릎 꿇지 않은 자리

수난

다수가 굽힌 자리에서, 남은 사람들은 무엇을 붙들었나?

  • 1938년 9월, 장로교 총회가 경찰에 둘러싸인 채 신사참배를 «국가 의례»로 받아들이기로 가결했다.
  • 거부한 이들은 감옥으로 갔고, 주기철은 1944년 평양 형무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 굴복한 다수와 버틴 소수 — 한국 교회가 가장 아프게 기억하는 시간이다.

흐름

무슨 일이 있었나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으로 전시 체제가 굳어지면서 총독부는 «황국신민»을 요구했다. 신사참배가 그 상징이었다. 총독부는 그것이 종교가 아니라 국가 의례라고 했고, 교회는 그 말을 받아들일 것인지 앞에 섰다.

먼저 학교가 부딪혔다. 1935년 평양의 기독교계 학교장들이 참배를 거부했고, 총독부는 교장 인가를 취소했다. 숭실을 비롯한 여러 미션스쿨이 문을 닫는 쪽을 택했다 — 학교를 지키려면 절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1938년 9월 9일 평양에서 열린 장로교 제27회 총회. 회의장 안팎을 경찰이 채운 가운데 신사참배를 가결하고, 총대들은 곧바로 평양신사로 갔다. 감리교는 이미 앞서 받아들였고, 성결교와 다른 교단도 뒤를 이었다. 반대 발언은 제지당했다.

거부한 이들이 남았다. 주기철은 여러 차례 잡혀갔다 풀려나기를 되풀이하다 1944년 4월 평양 형무소에서 숨을 거뒀다. 그가 목회하던 산정현교회는 이미 폐쇄된 뒤였다. 한상동과 주남선은 경남에서 «참배 거부 운동»을 조직하다 갇혔고, «예수 천당»을 외치며 거리를 다니던 최봉석도 옥에서 죽었다. 박관준은 일본 제국의회에 뛰어들어 문서를 뿌렸다.

1940년에는 선교사들이 대부분 추방되거나 떠났고, 1943년 성결교회는 재림 신앙을 이유로 아예 해산당했다. 1945년에는 모든 교단이 하나의 관제 교단으로 묶였다. 해방이 되던 날, 감옥에서 살아 나온 사람들을 «출옥 성도»라 불렀다.

개념

먼저 정의하고 갑니다

신사참배
총독부가 «종교가 아닌 국가 의례»로 규정해 강요한 참배. 1938년 9월 장로교 제27회 총회가 이 논리를 받아들여 참배를 결의했고, 감리교·성결교도 뒤를 이었다. 총회 회의장은 경찰이 에워싸고 있었다.
출옥성도
해방 때 감옥에서 풀려난 신앙인들을 이르는 말. 이 호칭 자체가 해방 후 교회 재건 논쟁에서 도덕적 권위의 근거로 쓰였고, 그 서사가 이후 교단 분열의 언어가 됐다.
일본기독교조선교단
1945년 전시체제 아래 모든 개신교단을 하나로 묶은 관제 교단. 교회 조직이 국가에 통합된 마지막 단계였고, 해방과 함께 해체된다.

사건

그때 일어난 일

  1. 1935~38수난

    미션스쿨의 폐교

    학교장들이 참배를 거부하자 인가가 취소됐고, 숭실을 비롯한 학교들이 문을 닫는 길을 택했다. 남은 학교는 참배에 참여했다.

  2. 1938.9.9수난

    장로교 총회의 신사참배 가결

    평양에서 열린 제27회 총회가 신사참배를 종교 행위가 아닌 국가 의례로 규정하고 참여하기로 결의했다. 회의장은 경찰에 둘러싸여 있었고 반대 발언은 막혔다.

    출처 ·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7회 총회록
  3. 1938~수난

    거부와 투옥

    주기철·한상동·주남선·최봉석·안이숙 등이 거부하다 체포됐다. 교회가 폐쇄되고 목회자가 파면됐다.

  4. 1939수난

    박관준의 일본 제국의회 사건

    박관준이 안이숙 등과 함께 일본 의회 방청석에서 신앙의 자유를 요구하는 문서를 던졌다. 그는 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5. 1940수난

    선교사 추방

    본국의 철수 권고와 총독부의 압박으로 선교사들이 대부분 조선을 떠났다. 오십 년 만에 선교부가 비었다.

  6. 1943수난

    성결교회 해산

    재림 신앙이 국체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교단 자체가 해산당하고 교역자들이 검거됐다.

  7. 1944.4.21수난

    주기철 순교

    평양 형무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산정현교회는 이미 폐쇄된 뒤였다.

  8. 1945.8사회

    해방과 출옥 성도

    감옥에 있던 신앙인들이 풀려났다. 이들을 «출옥 성도»라 부른다. 그들이 나오면서 교회는 곧 다른 질문 앞에 선다.

사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주기철

1897–1944

산정현교회 목사

마산 문창교회를 거쳐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목회했다. 「일사각오」로 알려진 설교를 남겼고 다섯 차례 검속 끝에 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한계와 다른 평가

그의 이야기는 뒤에 크게 회자되면서 세부가 여러 갈래로 전해진다. 감옥에서의 일화 가운데는 확인하기 어려운 것도 있어, 확인된 기록과 전해지는 이야기를 가려 읽어야 한다.

한상동

1901–1976

목사·참배 거부 운동

경남에서 신사참배 거부 운동을 조직하다 검거되어 해방까지 갇혀 있었다. 해방 뒤 고려신학교를 세워 교회 재건을 주장했다.

한계와 다른 평가

그가 이끈 재건 운동은 신앙의 정직함을 지키려는 노력이었지만, 그 과정의 방식과 태도가 분열을 굳혔다는 비판도 함께 받는다.

주남선

1888–1951

목사·거창

거창에서 목회하며 참배를 거부해 투옥됐고, 해방 뒤 교회 재건에 힘썼다.

한계와 다른 평가

옥고의 후유증으로 해방 뒤 활동 기간이 길지 않았고, 그 시기의 기록도 많지 않다.

최봉석

1869–1944최권능

전도자

거리에서 «예수 천당»을 외치며 다닌 전도자로 알려졌다. 참배를 거부하다 갇혀 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한계와 다른 평가

그의 전도 방식은 당대에도 낯설게 여겨졌고, 남은 기록 대부분이 회고담이라 생애의 세부를 확정하기 어렵다.

안이숙

1908–1997

교사·『죽으면 죽으리라』 저자

박관준과 함께 일본 제국의회에서 문서를 뿌렸고, 오랜 옥고를 겪었다. 뒤에 그 경험을 책으로 남겼다.

한계와 다른 평가

그의 회고록은 널리 읽혔지만 개인의 기억에 기댄 기록이라, 다른 자료와 어긋나는 대목은 그대로 사실로 옮기지 않는 것이 옳다.

그때의 기록

남아 있는 자료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7회 총회록에는 신사참배 결의가 그대로 적혀 있다. 「신사참배는 종교가 아니요 국가 의식」이라는 문구와, 그것을 가결한 절차가 남아 있다.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7회 총회록 · 1938

주기철이 남긴 설교와 옥중 서신은 그가 무엇을 붙들었는지 보여 준다. 「일사각오」라는 제목으로 전해지는 설교가 대표적이다.

주기철 설교·서한 · 1938–1944

해방 뒤 각 교단이 작성한 피해 조사에는 폐쇄된 교회, 투옥된 교역자, 옥에서 죽은 사람의 수가 정리되어 있다. 자료마다 수가 다르므로 이 앱은 범위로만 적는다.

교단별 전후 조사 보고 · 1945~

확인

잘못 알려진 이야기

이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확인해 보면

총회가 가결했고 대다수 교회와 목회자가 참여했다. 거부한 이들은 소수였다. 이 사실을 흐리면 해방 뒤의 갈등과 분열을 설명할 수 없다.

이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신사참배는 단순한 절 한 번이었다.

확인해 보면

참배로 끝나지 않았다. 예배 순서에 궁성요배와 황국신민서사가 들어갔고, 설교 내용까지 검열받았으며, 성경의 일부를 읽지 못하게 하는 데까지 갔다.

갈리는 것

견해가 나뉩니다

신사참배에 참여한 교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회개와 정리가 먼저라는 쪽

교회가 공식으로 죄를 인정하고 책임을 물은 뒤에야 다시 설 수 있다고 보았다. 해방 뒤 고신 계열이 이 길로 갔다.

용서와 재건이 먼저라는 쪽

총칼 앞에서 이루어진 일이며, 이미 회개한 이들을 다시 정죄하면 교회가 갈라진다고 보았다. 실제로 갈라졌다.

연구사

학계는 이렇게 읽어 왔습니다

쟁점

신사참배 결의의 책임을 어디에 물을 것인가

강압의 산물로 보는 쪽

총회 표결 과정 자체가 경찰의 통제 아래 있었고, 개인의 선택 여지가 거의 없었다고 본다.

교단의 책임을 묻는 쪽

강압이 있었더라도 교단이 공식 결의로 신학적 정당화를 제공했고, 그 뒤 전시 협력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지적한다. 김승태 등의 자료 연구가 이 논의의 토대다.

지금 대체로 합의된 것«교회 전체가 거부했다»는 서술은 사료와 맞지 않는다. 거부는 소수였고, 그 사실을 분명히 하는 것이 연구의 출발점이다.

현장

이 시대를 볼 수 있는 곳

오늘

나에게 묻는 질문

«그때 나는 어느 쪽이었을까»를 물어야 이 역사는 남의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더 읽을 것

이 시대를 더 파려면

  • 김승태『한국 기독교와 신사참배 문제』총회록·재판기록 등 1차 자료 정리
  • 김승태『식민권력과 종교』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한국 기독교의 역사』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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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문제

  1. 11938년 장로교 총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한 근거는?

  2. 2주기철 목사가 세상을 떠난 곳은?

  3. 31943년 교단 자체가 해산당한 교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