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내리는 방식
왜 한국 교회는 처음부터 «스스로 부담하는 교회»가 되었나?
- 선교사들은 네비우스 방법을 받아들여, 교회가 스스로 전하고·다스리고·부담하도록 정했다.
- 성경을 함께 공부하는 «사경회»가 신앙의 뼈대가 됐고, 한글 성경이 그 도구였다.
- 선교부는 부산·대구·전주·군산·목포·광주·평양·선천으로 퍼졌고, 신분의 벽이 교회 안에서 먼저 흔들렸다.
흐름
무슨 일이 있었나
1890년 중국에서 일하던 선교사 존 네비우스가 서울을 방문해 젊은 선교사들에게 자신의 방법을 설명했다. 요지는 이것이었다 — 돈으로 사람을 고용해 교회를 세우지 말고, 각 신자가 자기 자리에서 일하며 스스로 전하게 하라. 교회는 스스로 다스리고, 예배당은 스스로 지어라.
1893년 장로회 선교사공의회는 이 원칙을 정책으로 못 박았다. 상류층보다 일하는 사람과 부녀자를 먼저 찾을 것, 한글 성경을 쓸 것, 학교는 반드시 성경을 가르칠 것, 자립을 목표로 할 것. 이 결정이 이후 한국 교회의 성격을 크게 좌우했다.
«사경회»가 그 중심이었다. 농한기에 며칠씩 모여 성경을 통독하고 배우는 모임이었다. 여기서 한글을 처음 배운 사람이 많았다. 성경을 읽기 위해 글자를 배웠고, 글자를 배우자 세상이 달라졌다.
선교부는 사방으로 퍼졌다. 1891년 부산, 1893년 평양과 전주, 1896년 대구와 군산, 1898년 목포, 1901년 선천. 1892년 미국 남장로교의 일곱 젊은이가 들어와 호남을 맡았다.
교회 안에서 신분이 흔들렸다. 1895년 무렵 백정 박성춘이 곤당골교회에서 양반들과 한자리에 앉아 예배한 일은 조선 사회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의 아들 박서양은 뒷날 세브란스에서 의학을 배워 의사가 됐다.
개념
먼저 정의하고 갑니다
- 네비우스 방법
- 자전(自傳)·자치(自治)·자급(自給)의 삼자원리를 뼈대로 한 선교 정책. 존 네비우스가 중국 경험에서 정리한 것을 1890년 이후 한국 선교부가 채택했다. 성경 공부(사경회)와 평신도 지도자 양성이 핵심 장치였다.
- 사경회査經會
- 농한기에 며칠에서 몇 주씩 모여 성경을 통독·학습하던 집회. 참가자가 스스로 경비를 부담했고, 여기서 한글을 배운 사람이 많았다. 한국 교회의 성경 중심성과 새벽기도·통독 문화의 제도적 뿌리다.
- 전도부인傳道婦人, Bible woman
- 여성 신자를 찾아다니며 성경을 읽어 주고 가르친 여성 사역자. 남성 선교사가 접근할 수 없던 안채가 이들의 활동 무대였다. 교회를 실제로 확장한 인력이면서 기록에는 가장 적게 남은 집단이다.
사건
그때 일어난 일
- 1890제도
네비우스 방한
중국에서 일하던 존 네비우스가 서울에 와 자립·자전·자치의 방법을 설명했고, 젊은 선교사들이 이를 받아들였다.
- 1891전해짐
부산 선교부
부산에 선교 거점이 마련되면서 남쪽 항구가 통로가 됐다.
- 1892전해짐
남장로교 일곱 사람
레이놀즈 부부, 전킨 부부, 테이트 남매, 리니 데이비스가 들어와 호남 선교를 맡았다. 전주·군산·목포·광주·순천의 선교부가 여기서 나온다.
- 1893제도
선교사공의회 정책 10개조
일하는 계층과 부녀자를 먼저 찾을 것, 한글 성경을 쓸 것, 자립할 것 등을 정했다. 한국 교회의 성격을 결정한 문서다.
- 1893전해짐
평양 선교부
마펫을 중심으로 평양에 자리를 잡았다. 뒷날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릴 도시의 시작이다.
- 1894~95사회
동학농민운동과 청일전쟁
전쟁과 봉기로 나라가 흔들리는 사이, 사람들은 새로운 가르침에 더 귀를 기울였다.
- 1895사회
곤당골교회의 백정
백정 박성춘이 양반과 함께 예배한 일로 교회가 갈등을 겪었다. 신분의 벽이 교회 안에서 먼저 흔들린 사건이다.
- 1896전해짐
대구 선교부
아담스 등이 대구에 자리 잡았고, 뒤에 청라언덕의 선교사 주택과 병원·학교가 여기서 나온다.
- 1897사회
『죠션크리스도인회보』·『그리스도신문』 창간
한글 신문이 나오면서 교회의 소식과 지식이 글로 퍼지기 시작했다.
- 1900전해짐
신약전서 번역 완료
선교사와 한국인 번역자들이 함께 작업한 신약 번역이 마무리됐다.
- 1901제도
한국인 첫 감리교 목사 안수
김창식·김기범이 목사로 안수받았다. 한국인이 목회의 책임을 맡기 시작했다.
사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새뮤얼 마펫
1864–1939Samuel A. Moffett, 마포삼열평양 선교부·평양신학교
평양을 거점으로 삼아 교회와 학교, 신학교를 세웠다. 한국인 목회자 양성의 뼈대를 놓았다.
한계와 다른 평가
신학 교육에서 보수적 노선을 강하게 밀어 다른 견해를 배제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뒷날 신학 논쟁과 분열의 배경 가운데 하나로 지목된다.
윌리엄 전킨
1865–1908William M. Junkin, 전위렴남장로교 선교사
군산에서 학교와 병원을 시작했고, 전염병이 도는 마을을 돌다 건강을 잃고 마흔셋에 세상을 떠났다.
한계와 다른 평가
세 아이를 조선에서 잃었다. 선교사의 헌신을 말할 때 그 가족이 치른 대가는 흔히 빠진다.
박성춘
?–1933백정 출신 장로
천대받던 신분으로 교회에 들어와 장로가 됐고, 신분 철폐 운동에도 목소리를 냈다.
한계와 다른 평가
그의 생애를 전하는 기록은 대부분 선교사 쪽 자료다. 본인의 말로 남은 것은 매우 적다.
박서양
1885–1940의사·독립운동가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세브란스에서 의학을 배우고 의사가 됐으며, 뒤에 만주에서 병원을 열고 독립운동을 도왔다.
한계와 다른 평가
귀국 후의 행적과 말년에 대해서는 확인된 자료가 많지 않다.
제임스 게일
1863–1937James S. Gale, 기일선교사·번역가
조선말을 깊이 익혀 『한영자전』을 펴내고 성경 번역에 참여했으며, 『천로역정』을 우리말로 옮기고 우리 옛글을 영어로 소개했다.
한계와 다른 평가
그의 번역과 저술은 조선 문화를 서양에 알렸지만, 그 해석에는 선교사의 눈이 강하게 배어 있다. 성경 번역 방침을 두고 동료들과 오래 다투기도 했다.
호머 헐버트
1863–1949Homer B. Hulbert, 흘법교사·한국의 벗
육영공원 교사로 들어와 한글로 된 세계지리 교과서 『사민필지』를 썼고, 한글의 우수함을 널리 알렸다. 을사조약 뒤에는 고종의 특사로 국제 사회에 조선의 사정을 호소했다. «웨스트민스터보다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말대로 양화진에 잠들었다.
한계와 다른 평가
그는 선교사보다 교육자·언론인으로 활동한 시기가 길었고, 그의 정치 활동은 당시 선교부의 «정치 불개입» 방침과 부딪혔다.
로제타 셔우드 홀
1865–1951Rosetta Sherwood Hall의료 선교사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병원을 세우고 조선 여성 의사를 길렀으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한글 점자를 만들어 교육을 시작했다. 남편 윌리엄 홀은 청일전쟁 중 환자를 돌보다 세상을 떠났고, 아들 셔우드 홀은 결핵 퇴치를 위해 크리스마스실을 만들었다 — 삼대가 이 땅에서 일했다.
한계와 다른 평가
여성 의료의 문을 연 공은 크지만, 그가 세운 기관들도 서양식 의료를 «문명»으로 놓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유진 벨
1868–1925Eugene Bell, 배유지남장로교 선교사·목포·광주
목포와 광주에 선교부를 열고 학교와 병원을 세웠다. 그의 후손들은 오늘까지 북한 결핵 지원 사업을 잇고 있다.
한계와 다른 평가
첫 아내와 둘째 아내를 모두 조선에서 잃었다. 호남 선교의 성과를 말할 때 그 대가는 자주 빠진다.
클레멘트 오웬
1867–1909Clement C. Owen, 오기원의사·목사·광주
의사이자 목사로 광주와 전남 일대를 돌며 진료하고 전도했다. 순회 중 병을 얻어 마흔둘에 세상을 떠났고, 유가족과 동료들이 그를 기려 오웬기념각을 세웠다.
한계와 다른 평가
그가 맡은 지역이 지나치게 넓었다는 지적이 있다. 적은 인원으로 넓은 땅을 감당하던 초기 선교부의 무리가 그의 죽음에 겹쳐 있다.
윌리엄 베어드
1862–1931William M. Baird, 배위량선교사·숭실 설립
부산과 대구를 거쳐 평양에 자리 잡고 숭실학교를 세워 대학 과정까지 열었다. 우리말 교과서를 만들고 번역에도 힘썼다.
한계와 다른 평가
그가 세운 학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문을 닫는 길을 택했다. 교육으로 이룬 것이 정치의 힘 앞에서 어떻게 되는지를 그의 학교가 보여 준다.
그때의 기록
남아 있는 자료
1893년 장로회 선교사공의회의 «10개조 정책»은 대상·언어·자립에 대한 방침을 조목으로 적었다. 오늘 한국 교회의 여러 특징이 이 문서에서 설명된다.
사경회 보고들은 참석자 수, 걸어온 거리, 스스로 부담한 경비를 적어 두었다. 며칠 치 양식을 지고 수십 리를 걸어온 사람들의 기록이다.
확인
잘못 알려진 이야기
이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네비우스 방법은 한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한국식 선교 정책이다.”
확인해 보면
중국에서 일하던 네비우스가 정리한 방법을 한국 선교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다만 그것이 가장 철저하게 적용되고 열매를 낸 곳은 한국이었다.
갈리는 것
견해가 나뉩니다
«스스로 부담하는 교회»는 좋기만 했나
긍정으로 보는 쪽
선교비에 기대지 않았기에 선교사가 떠난 뒤에도 교회가 살아남았고, 한국인 지도자가 일찍 세워졌다.
그늘을 보는 쪽
가난한 신자들에게 부담이 컸고, 헌금과 건축을 신앙의 잣대로 삼는 문화가 이때부터 자리 잡았다고 본다.
연구사
학계는 이렇게 읽어 왔습니다
쟁점
네비우스 방법은 한국 교회 성장의 원인이었나
결정적이었다는 쪽
자립 구조와 평신도 훈련이 선교사 철수 이후에도 교회를 버티게 했다고 본다. 오랫동안 표준 설명이었다.
과대평가라는 쪽
정책 문서와 실제 운영은 달랐고, 성장의 더 큰 요인은 사회 변동(신분제 해체, 국권 상실기의 대안 공동체 수요)이었다고 본다. 류대영 등의 비판적 연구가 이 자리에 있다.
신학
무엇을 믿었기에 그렇게 했나
삼자원리(자전·자치·자급)는 어디서 왔는가
엡 4:11–16 «각 지체의 분량대로»
선교신학의 산물
헨리 벤과 루퍼스 앤더슨이 19세기 중반에 정식화한 «토착 교회(indigenous church)» 원리다. 선교사는 교회를 세운 뒤 물러나야 한다는 «안락사(euthanasia of mission)» 개념이 그 뼈대다.
근거 · 교회의 보편성과 지역 교회의 완전성
현장에서 다듬어진 방법
네비우스가 중국에서 실패와 시행착오 끝에 정리했고, 한국 선교부가 1890년 이후 정책으로 채택했다. 이론이 먼저가 아니라 실천이 먼저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오늘로 이어지는 것 — 자급 원리는 한국 교회에 «내 힘으로 세운 교회»라는 자부심과 함께 «건축과 헌금이 신앙의 척도»라는 문화를 남겼다. 두 가지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이 이 원리를 평가할 때의 핵심이다.
선교지 분할협정(comity)은 교회론적으로 정당한가
효율과 협력으로 보는 쪽
중복 투자를 피하고 갈등을 줄이는 실천적 지혜였다고 본다.
교회를 지역으로 나눈 것이라 보는 쪽
한 지역의 신자가 교파를 선택할 수 없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교파색이 지역색이 되었다. 선교사들이 한국 교회의 형태를 미리 결정한 셈이라는 비판이 따른다.
현장
이 시대를 볼 수 있는 곳
- 대구 청라언덕(선교사 주택)대구·경북 · 선교사 마을스윗즈·챔니스·블레어 주택 세 채가 언덕에 남아 있다. 대구 선교부가 시작된 자리다.
- 대구제일교회대구·경북 · 초기 교회 건물1893년 시작된 영남 초기 교회. 청라언덕 바로 아래에 있다.
- 부산 초량교회부산·경남 · 초기 교회 건물1892년 시작된 부산의 초기 교회. 해방 뒤 재건 논쟁의 한 자리이기도 했다.
- 부산진일신여학교부산·경남 · 학교·병원의 시작1895년 호주 장로교 선교사들이 세운 여학교. 부산 3·1운동이 여기서 시작됐다.
- 전주기독교근대역사기념관전북 · 박물관·기념관호남 선교의 자료를 모은 기념관. 남장로교 선교사들의 활동을 한자리에서 본다.
- 전주 서문교회전북 · 초기 교회 건물전주에서 가장 이른 교회 가운데 하나. 종각이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다.
- 군산 구암교회·3·1운동기념관전북 · 선교사 마을군산 선교부가 있던 구암동산. 호남 최초의 만세운동이 여기서 시작됐다.
- 목포 양동교회광주·전남 · 초기 교회 건물1897년 개항한 목포에 세워진 초기 교회. 돌로 지은 예배당이 남아 있다.
- 광주 오웬기념각광주·전남 · 선교사 마을선교사 오웬을 기려 1914년 지은 집회 공간. 양림동 근대역사문화마을의 중심이다.
- 김제 금산교회(ㄱ자 예배당)전북 · 초기 교회 건물남녀가 따로 앉도록 ㄱ자로 지은 예배당. 그 시대 사회와 신앙이 만난 자리를 그대로 보여 준다.
오늘
나에게 묻는 질문
성경을 읽으려고 글자를 배운 사람들이 있었다. 나에게 성경은 무엇을 배우게 하고 있나?
1차 사료
무엇을 보아야 하나
사료는 «무엇을 말하는가»만큼 «무엇을 말하지 못하는가»가 중요합니다. 각 자료마다 그 한계를 함께 적었습니다.
장로회 선교사공의회 회의록
Minutes of the Council of Missions Holding the Presbyterian Form of Government
결정 사항만 남고 토론 과정은 거의 남지 않는다. 왜 그렇게 정했는지는 같은 시기 개인 서한과 맞대어야 보인다.
The Korea Mission Field / The Korean Repository
선교사들이 영문으로 낸 잡지다. 당대의 사정을 촘촘히 전하지만 필자가 모두 외국인이므로 한국인의 목소리는 인용의 형태로만 들어온다.
볼 수 있는 곳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영인본
죠션크리스도인회보 · 그리스도신문
한글 신문이라 평신도 독자를 향한 문체다. 교회 소식과 함께 계몽 담론이 섞여 있어, 신앙과 근대가 어떻게 한 묶음으로 제시됐는지 보여 준다.
더 읽을 것
이 시대를 더 파려면
- 류대영『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성장 요인의 사회사적 재해석
- 이만열『한국기독교사특강』
-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한국 기독교의 역사』 I선교부별 지역 전개
판본과 출판연도는 도서관 목록에서 확인하세요. 이 앱은 확실하지 않은 서지 정보를 적지 않습니다.
확인
세 문제
1네비우스 방법의 세 가지 원리는?
2농한기에 며칠씩 모여 성경을 배우던 모임은?
31892년 들어와 호남 선교를 맡은 선교부는?